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나는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
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
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
밝은 피 뽑아 네게 흘려 보내며
즐거움에 떨던 아 나의 사랑을
먼 우물 앞에서도 목마르던
나의 뿌리여
나를 뚫고 오르렴
눈부셔 잘 부스러지는 살이니
내 밝은 피에 즐겁게 발 적시며
뻗어 가려무나
척추를 휘어접고 더 넓게 뻗으면
그때마다 나는 착한 그릇이 되어
너를 감싸고
불꽃 같은 바람이 가슴을 두드려 세워도
네 뻗어 가는 끝을 하냥 축복하는 나는
어리석고도 은밀한 기쁨을 가졌어라
네가 타고 내려올수록
단단해지는 나의 살을 보아라
이제 거무스레 늙었으니
슬픔만 한 두릅 꿰어 있는 껍데기의
마지막 잔을 마셔다오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내 가슴에 끓어오르던 벌레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빈 그릇
너의 푸른 줄기 솟아 햇살에 반짝이면
나는 어느 산비탈 연한 흙으로
일구어지고 있을 테니
'후정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씻기·두팔간격·방역관리자지정…'생활방역' 기본수칙 공개 (0) | 2020.04.22 |
---|---|
세계 의사 80% 이상이 코로나19 2차 파동 전망 (0) | 2020.04.14 |
키르케고르 명언 (0) | 2020.03.23 |
침 맞는 SK 킹엄 "어깨 뭉친데 최고죠~" 한국이 익숙한 외인들 (0) | 2020.03.23 |
스쿨존 교통사고 시 최대 무기징역..민식이법 25일 시행 (0) | 2020.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