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칼럼

너 또 보리밥 먹었지! 엄동설한 때아닌 보리밥 열풍-조선일보 2005. 12. 13 (화)

유후정한의원원장 2012. 12. 18. 17:12

너 또 보리밥 먹었지! 엄동설한 때아닌 보리밥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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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5.12.14 / 문화 A21 면 기고자 : 이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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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매섭던 2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뒷골목 ‘봄날의 보리밥’. 낮 12시15분쯤 들어서자 “20분 이상 기다리셔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 왔다. 길게 늘어선 줄이 같은 건물 아래층에 있는 이탈리아 퓨전 레스토랑이나 중식당보다 훨씬 길다. “폭설 이후 날이 추워서 멀리서 오는 손님이 그나마 좀 줄어든 거예요. 날씨 좋은 날은 40~50분까지도 기다려요.”(‘봄날의 보리밥’ 원정훈 대리)

엄동설한, 때 아닌 보리밥집이 난리다. ‘사월에 보리밥’ ‘봄날의 보리밥’ ‘논두렁찰보리밥’ 등 지난 1~2년 새 문을 연 보리밥 전문점만도 여러 곳. 한정식 체인점 ‘놀부’를 성공시킨 오진권 사장이 지난해 압구정동에 개점한 ‘사월에 보리밥’은 입소문을 타고, 최근 강남역에 분점을 냈다.

‘봄날의 보리밥’은 원래 고깃집 ‘육반’자리였다. ‘스파게띠아’ ‘매드포갈릭’ 등을 운영하는 외식전문기업 썬앳푸드가 외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만든 레스토랑식 고깃집이었지만 매출은 기대에 못 미쳤다. 결국 지난 3월 고급한 인테리어의 보리밥 전문점으로 업종을 180도 변경했고, 매상이 35%나 껑충 뛰었다. ‘겨울에는 보리밥을 먹지 않는다’는 속설에도 불구하고 7~8월보다 저녁시간대 매상이 약 20% 오른 상태. ‘보리밥 정식’(6000원) 외에도 명란 비빔밥·바싹 불고기·고등어 정식 등 다양한 메뉴를 취급해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다. 손님 대다수는 인근 직장인이지만, 주말에는 멀리서 단체손님, 세종문화회관 공연 관람객,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몰린다.

왜 보리밥이 인기일까. 2일 약국 동료들과 함께 ‘봄날…’을 찾은 약사 오현정(28·삼정바로약국)씨는 “건강식이잖아요!”라고 답했다. 조미료 많이 쓰는 식당은 피하고 빵도 호밀빵만 먹는다는 오씨. “보리밥에 10여가지 나물을 비벼먹으니 몸에도 좋고, 요즘 생긴 보리밥집들은 내부가 넓고 쾌적해서 ‘웰빙’하는 기분이 들어요.”

강영순(71)씨는 ‘옛날 생각이 나서’ 주말마다 ‘사월에 보리밥’을 찾는 경우다. “서울로 시집 온 지 50년 됐지만 어릴 때 고향(경남 하동)에서 보리밥에 열무김치 얹어 먹던 기억이 아직도 선해요. 그 동안은 그런 음식을 먹으려야 먹을 데가 없었잖아요.” 강씨의 심경을 대변하는 글이 식당 입구에도 붙어 있었다. ‘…보리밥을 강된장에 비벼 먹는데 이 생각 저 생각이 다 났다. 아마 그 순간 나는 보리밥을 먹었던 게 아니고 어린 시절을 먹고 있는 중이었을 것이다’(신경숙, ‘잊을 수 없는 밥 한 그릇’ 중에서).

동의보감에서는 보리가 흰 머리를 방지하고 오장을 튼튼히 하며 오래 먹으면 중풍을 예방한다고 한다. 그러나 겨울에는 보리밥을 먹지 않는 사람이 많다. 추위 속에 자라는 보리는 몸을 차게 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후정 한의원의 유 원장은 “겨울에 보리밥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도 편견”이라며 “더운 여름에 삼계탕으로 속을 데우는 게 원기 보충이 되듯, 계절이 아니라 체질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의학에서는 땀이 많이 나는 여름에 체내 혈액순환이 덜 돼서 속이 냉해지고, 겨울에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내장 온도가 높아진다고 본다. 따라서 몸이 냉(冷)한 체질인 소음인이나 위장이 약한 사람이 아니라면, 겨울에 가끔씩 보리밥이나 냉면을 먹는 게 오히려 체내 열을 식혀 줄 수 있다는 것. 보리밥은 열량이 낮고 식이섬유가 많아 변비를 개선하고 당뇨나 심장병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유 원장은 “100% 보리만으로 먹는 것보다는 쌀과 섞어 먹는 게 영양과 소화 양면에서 바람직하다”며 “보리밥이 유난히 소화가 안 되는 사람은 몸에 안 맞는다는 뜻이니 피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