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정생각

침치료의 원리는 무엇일까요?

유후정한의원원장 2013. 8. 27. 13:39

방금 전에 침치료를 받으며 20대 여성환자분이 묻습니다.

침을 맞으면 어떻게 좋아지는 것인가요?

시침(施鍼)을 하다가 갑자기 받은 질문이라 짧게 대답해드렸는데

블로그에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려 합니다.

 

한의학적으로 말하면 침치료의 원리는 조기치신(調氣治神)이라고 합니다.

침을 놓으면 기순환을 고르게 조절하며 정신을 다스린다는 뜻인데요.

한자 자체가 어렵지는 않으나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우선 기(氣)라는 글자부터 난해합니다.

알듯 말듯 하기도 하고

왠지 무술이나 기공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한의대를 다니면서 한의학을 공부할때 항상 마음속에서 풀어야할 숙제 같은 것이

기에 대한 정의였습니다.

 

제가 한의대 입학 전에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때

선배들의 첫 질문도 기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지금도 그 상황이 기억이 납니다.

'기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선배가 물었고

한의학을 배우지도 않았고 

입학전에 노자,장자에 대한 수필집 같은 것만 봤던

저는 '기는 윤활유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역시나 선배는 틀렸다고 하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틀린 대답이었죠.

그때는 인체 관절에 기순환이 잘되어야 움직이는 동작이 잘되므로 기가 윤활유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한의대에 입학을 하면 예과 2년을 마치고 본과진입식을 한 후에 본과 4년을 다닙니다.

의대나 한의대는 예과와 본과의 차별이 심합니다.

예과생들은 다양한 교양과목을 섭렵하지만 본과에서는 본격적으로 의학과 한의학에 대한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과 선배들은 예과 후배들을 애니멀(동물)이라고 합니다. 아직 사람(본과생)이 덜 되었다는 것이죠.

 

본과3,4학년은 임상과목을 엄청나게 공부합니다.

본과1,2학년은 그전에 학문의 기초에 대해서 많이 공부합니다.

 

아마도 본과2학년때 였을 겁니다.

'기란 무엇인가?' 라는 리포트를 제출하라는 과제가 생겼습니다.

저는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서 구한말 최한기가 저술한 '기학' 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최한기는  구한말 실학자로 유명한 분이죠.

도올 김용옥 선생님도 그 책을 보고 '독기학설'이라는 책을 내신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대학생들이 과제를 제출할때 그냥 써머리된 것을 보고 복사하듯이 제출하는데요.

저는 그당시 기학이라는 책을 정독하고 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여 제출했습니다.

서양학문이 중국을 통해서 전해지던 조선말기에 최한기는 기에 대해서 여러 관점에서 논술하였습니다.

 

제가 기에 대한 정의를 리포트에 동성(動性)이라고 했습니다.

움직이는 속성을 가진 것을 '기'라고 한다는 것이죠.

불교에서 일체유심조 즉 삼라만상이 모두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는 것처럼

동양철학에서는 기일원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주의 근원을 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입니다.

 

이야기가 좀 길어졌습니다.

기에 대해서 사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 켠다고 하죠.

팔다리를 쭉 펴면서 근육이 풀어지는 그 느낌이 기입니다.

손바닥을 비벼서 따뜻한 느낌이 나는 것도 기입니다.

그래서 온기, 냉기 이런 말이 있죠.

우리가 들이마시고 내쉬는 공기도 기죠.

 

한의사들이 침을 놓으면서 좌우로 돌리거나 찌르면서 득기(得氣)라는 말을 씁니다.

침이 제대로 혈자리에 들어갔을 때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을 말합니다.

 

이렇듯 우리 생활에서 기와 연관이 없는 것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강 기에 대한 뜻이 감이 오리라 생각됩니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침으로 치료하는 원리가 조기치신이라 했는데 좀더 부연설명하겠습니다.

 

조기(調氣)는 즉 기를 순환시킨다는 뜻으로 침의 자극을 통해서

경락(기가 흐르는 통로)에 따라서 기순환을 조절한다는 뜻입니다.

기순환은 기가 움직여야 혈이 따라서 움직이므로 혈액순환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인체내의 생리를 정상화시키는 작용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치신(治神)은 정신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침을 통한 자극으로 인해서

한의학에서 원신지부(元神之府-근원적인 정신활동을 하는 장기)라고 하는

두뇌의 신경계통이나 내분비계(호르몬을 생산,분비하는 시스템)에 영향을 줘서

원만한 정신활동이 되도록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단순하게 보일 수 있는 침놓는 시술이

기를 다스려서 인체순환을 도와 아픈 곳을 다스려주고

뇌에 영향을 줘서 신경을 활성화하고 내분비작용을 원활히 해주기 때문에

한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침 놓는 것을 아트(art)라고 합니다.

사암침,태극침,오행침,파동침 등 침놓는 방법이 수십가지가 넘는데 그 중에서 선택한 후에 정확히 취혈해서 효과를 내는 것이 예술의 경지와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혹 젊은 혈기의 한의사들이 한의원에 침한번 맞으러 왔다는 말을 쉽게 하는 환자를 보면 속상해 하기도 합니다.

침치료가 좋을지 뜸이나 부항이 좋을지 한약이 좋을지 숙련된 한의사가 판단해서 최적의 치료를 해야하는데

환자들은 쉽게 생각해서 바늘 한번 꾹 찔러주면 시원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섣불리 말하기 때문입니다.

 

일침 이구 삼약(一鍼 二灸 三藥)이란 말이 있듯이

한의학적 치료의 첫번째로 꼽을 만큼 침이 중요하고

실제로 한의원에서 이루어지는 치료방법 중에 제일 많이 사용하는 것이 침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