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호랑이
지난 주말에 인왕산에 다녀왔습니다.
올라가는 길에 인왕산 호랑이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비록 모형물이었지만 폼나게 호랑이가 도로에 딱 지키고 있으니
왠지 든든하고 푸근한 느낌이었습니다.
젊은 연인들이 쌍쌍이 데이트하며 산책을 하고
해질 무렵이 되니 서서히 해가 산 넘어 가는 풍경이 장관이었습니다.
산봉우리 근처에 성곽도 보이고
우리가 옛이름 한양이란 곳에 살지만
아름다운 산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인왕산에 오르니
대학시절 좋아했던 시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정현종 시인의 '내 어깨 위의 호랑이' 라는 시입니다.
내 어깨 위의 호랑이 ㅡ밤에 산을 오르내리며
추억은ㅡ
익는다
밤중에 四佛山(사불산)을 오른다
달이 있으나 구름에 가려
계곡은 컴컴하고 길은 희미하다
낙엽 아래 잔돌이 많아
걷기가 쉽지 않고
일행의 전짓불이 길을 비춰준다
추억은 익어서 떨어진다
閏筆庵(윤필암) 비구니 파란 머리들
인제는 익어서 달이 되어
제 키만한 높이에서 파랗게
구름에 가렸다 나왔다 하고,
달도 구름도 잘 익어서
밝거나 어둡거나 제 모습대로
익어서 모두 흐름 三昧(삼매)
지나간 시간이여
익어서 떨어져야 보석이니
해골 썰렁한 암자를 지나
조선 소나무 서 있는 정상에 오른다
밤바람은 차고, 먼 외로운 불빛들.
우주를 한마당 노래방으로 만들고
(이런 노래방을 두고 왜 그
컴컴한 구석에서 소리들을 지르는지)
다시 길을 더듬어 내려온다.
이 밤에 산을 내려오니
막무가내로 나는 소리친다
[그놈의 호랑이 묵직하구나!]
즉시 익어버리는 시간도 있으니
나는 호랑이 한 마리를 잡아
짊어지고 내려왔던 것이다.
익은 시간 속의 전설이여
전설 속에 회복되는 시간이여
오, 내 어깨 위의 호랑이여-정현종 작
산을 내려오며 시인이 내뱉었을 '그 놈의 호랑이 묵직하구나' 라는 구절이
대학시절 얼마나 신선하고 마음을 움직였는지 모릅니다.ㅎㅎ
등산의 감회를 저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시인의 상상력과 여유로움이 부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