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정생각

정현종 시인의 찬미 귀뚜라미

유후정한의원원장 2017. 10. 16. 17:13

   가을이 오기는 했다마는

   무슨 섬돌이라고

   내 책상 아래서

   소리를 내고 있는 귀뚜라미야,

   네 맑은 음악

   네 깨끗한 소리

   그다지도 열심히

   그침 없이 오래오래

   내 귀에 퍼부어

   귓속에

   마르지 않는 샘물을

   세상에서 제일 맑은 샘물을

   솟아나게 하고 있는

   귀뚜라미야,

   지난 여름의 내 게으름과

   게으르기 쉬운 정신을 일깨우는

   17mm 작은 몸의

   날개에서 울려내는

   너의 소리는, 예컨데,

   저 모든 종교라는 것들의 경전들을

   다 합해도 도무지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할

   말씀이시다 실솔이여,

   내가 알아들을 때까지

   (실은 들리자마자 알아들었거니와)

   열심히, 의도한 듯 열심히,

   내 귀에 퍼부어

   내 가슴을

   세상에서 제일 맑은 샘물의

   발원지로 만들고 있는

   실솔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