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에 출간된 1984는 조지 오웰의 대표작입니다.
그당시 1,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이 그의 작품 속에 많이 담겼습니다.
전체주의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미래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기술하였지만 1984년이 지난 요즘 현실에서 보아도 너무나도 정확하고 예리한 지적이 꽤 많습니다.
영국인이지만 인도 태생인 조지 오웰은 영국에서 교육받다가 미얀마 경찰관이 되기도 하고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 취재기자, 참전 군인 등등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경험히 고스란히 책에 녹아 냉철한 분석으로 현실 세계를 꼬집습니다.
텔레스크린이라는 tv같은 큰 화면을 통해서 직장이나 집에서 일거수일투족 감시당하고 개인적인 사고마저도 철저하게 통제하는 전체주의 사회의 끝장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승리했다면 아마도 1984는 소설이 아니라 다큐같은 체험기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현대사회가 예전에 비해 좀더 민주화되고 개인의 자유가 폭넓게 인정되고 있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릅니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미드나 미국 영화를 보다보면 전체주의에 입각한 미래사회가 배경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폐허 이후의 살아남은 인류들이 제도적 질서에 입각해서 자유가 많이 통제되는 상황들이 연출됩니다.
빅데이터가 어떤 권력에 의해서 좌지우지 된다면 우리 미래가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1984에서는 절대권력을 지닌 빅브라더가 끊임없이 과거역사를 왜곡하고 가족간의 사랑, 이성과의 교제, 친구나 이웃과의 만남 등등을 모두 감시해서 정상적인 사유나 유희, 창작활동 등이 불가능합니다.
윈스턴이라는 주인공이 이에 反해 이성을 사귀고 혁명을 꿈꾸고 동지를 찾다가 오히려 감금당하며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느끼는 자유 그리고 개인이라는 정서와 가치는 근대 이후에 형성이 된것입니다. 중세 이전만 하더라도 개인 보다는 자기가 속한 계급이나 집단에 의해서 여러가치가 결정되고 개인적인 자유나 사고는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세 이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꿈과 현실도 구분없이 살기도 합니다. 그렇다보니 꿈에서 본 여러 모습들을 현실에 투영하여 믿기도 하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없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그런 전통이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꿈을 꾸고 나면 그 꿈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되새겨보곤 합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나 칼 융에 의해서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개인과 집단과의 관계가 설정되고 자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게 됩니다.
프로이트 이전의 세계는 자기가 속한 집단이 나고 내가 집단이라는 이해가 먼저였습니다. 그런 공식을 깬 사람이 후기 인상주의에 속한 반 고흐 같은 화가입니다.
타인에게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 위대한 예술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대로 보고 그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삶을 미화할 필요도 없고 고독하고 못생겨도 그대로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여튼 조지 오웰은 천재적인 식견으로 국가나 절대적인 권력이 개인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 1984를 통해서 보여줬습니다.
공룡시대만 약육강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공룡같은 존재들이 건재합니다. 이런 공고한 벽을 무너뜨리는 위해서는 유튜브나 각종 sns 등을 통해서 개인과 개인 그리고 개인과 세계가 다이렉트로 연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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